[짙은 먹구름 / 부스러지는 낙엽 / 온몸을 옥죄이는]




 마왕성이 있는 결계의 숲에는 예전부터 내려오는 소문이 하나 있었다. 숲에는 까맣고 커다란 날개를 가진 악마가 살고 있으며, 마왕이 그 악마를 이용해 숲에 침입하는 인간들을 전부 죽여버린다는 것이다. 인간들에게 마왕과 악마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용감한 전사들은 그들의 목을 가져오겠다고 결계의 숲으로 하나 둘씩 떠나곤 했다. 
 물론 그 중 되돌아온 사람은 극소수다.
 돌아온 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정말로 악마와 마왕을 만났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기를 꺼려했다. 지금에서야 나는 그들이 어째서 그런 반응을 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 소문은 반은 틀렸고 반은 맞았다. 사람을 죽인다는 악마의 정체는 그냥 까맣고 커다란 날개를 가진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그 날개 때문인지 악마로 오해받아온 아이는 몸 여기저기에 생채기가 나있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습격을 받았는지 화살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기에 도와주려 다가가려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사방에 먹구름이 몰려들고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온 몸을 누가 옥죄는 것 같은 엄청난 압박감이 나를 덮쳤다. 주위의 나무덩쿨이 나를 결박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반응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상황파악을 위해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있는 순간, 내 눈 앞에 그 어린아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체격을 가진 '무엇'이 나타났다. 
 잊을 수 없었다. 입은 웃고 있지만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 온 몸에 두르고 있던 까만 망토.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머리에 돋아난 뿔. 그는 마왕이었다.

 "네가 토비오를 죽이려고 한 인간이야?"

 말투는 장난스러웠지만 목소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목까지 올라온 덩쿨은 숨조차 제대로 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아니에요! 저는 괜찮으니까 더는 인간을 해치지 마세요."
 "이리 와."
 "...."
 "어서. 토비오."

 토비오라고 불린 아이가 마왕에게로 천천히 다가가자 마왕은 아이를 끌어안고 깊게 입을 맞추었다.

 "그러니까 성 밖으로 나가지 말랬잖아."
 "오이카와씨가 인간을 죽인다면 그건 다 토비오 때문이야."
 "토비오를 해치는 인간을 살려줄 수 있을리가 없잖아."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왕은 능숙하게 아이의 몸에서 화살을 뽑았고 상처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아이는 아픈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마왕이 치료를 끝내자마자 잠이 든 것처럼 쓰러졌다. 넘어가는 아이의 몸을 가볍게 안아들고 자리를 벗어나던 그는 숨을 쉬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를 한번 쓱 쳐다보더니 말했다.

 "토비오가 봤으니 너는 살려주지. 돌아가면 제대로 전해. 한 번 더 이 애를 다치게 했다간 마을 전체가 도륙이 날 줄 알라고."

 나를 옥죄던 것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는 허겁지겁 공기를 들이마셨다. 꺼져가는 의식을 붙잡을 수 없어 나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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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운명의 상대는 어떻게 알아보나요?

실패와 실망과 좌절을 감수함으로써.]



비가 내리는 거리에 서 있었다. 내리는 비를 피하지도 않고 계속 맞아온 온 몸이 차갑게 식어갔지만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여기서 붙잡지 않으면 놓칠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돌아서는 오이카와의 소매자락을 간절히 붙잡았다.

"이거 놔야지, 토비오쨩."
 
버리고 떠나는 뒷모습이면서 목소리는 서러울정도로 다정했다. 놓으라고 했지만 그러지 말라는 말 같아서 오히려 옷이 구겨지도록 손에 쥐었다. 그럼에도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등지고 걷기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뒷모습을 이렇게 오래 보는 게 처음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헤어지는 거예요?"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매정하게 떨쳐내려고 차가운 비를 혼자 다 맞게 내버려뒀으면서 툭 치면 떨어질 카게야마의 손을 내치지 못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눈을 감고도 그려낼 수 있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그냥 카게야마의 모든 것들이 너무 익숙했다. 그래서, 더 이러고 있으면 안될 것 같았다.

"응. 지금, 여기서, 헤어지는거야."

카게야마는 몸을 움찔 떨었다. 어쩌면 토비오쨩과 오이카와씨는 운명이었던 게 아닐까? 그게 아니면 어떻게 거기서 딱 우연히 만났겠어! 오이카와가 숨이 막힐 듯 카게야마를 끌어안고 했던 말이었다. 정말로 여기서 끝이라면 꼭 물어봐야 할 것이 있었다.


"운명...이라고... 그랬잖아요."
"뭐?"
"오이카와 선배랑 저는 운명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서로 사랑하게 됐다고."
"...알고 보니까 아니었던걸까나."
"이제 와서 아니었다고요?"

울음에 받친 고함소리가 들렸다. 카게야마로서는 이 모든 상황이 이해 되지 않는게 당연했다. 오이카와는 무엇인가를 참아내는 듯 눈을 꼭 감았다. 이기적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같이 진흙탕을 구르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오이카와는 간신히 카게야마의 손에서 자신의 옷자락을 떼어냈다. 토비오. 너는 내게 좌절도, 패배도, 실망도 전부 안겨주었지만 난 단 한번도 네가 좋지 않았던 적이 없었어. 그래서 우리 사이는 여기서 그만둬야 하는 거야. 

"바보 토비오쨩. 그 말을 믿었어?"

오이카와는 끝까지 뒤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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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너를 빌려가고 싶어. 가지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을게.]



"하루쯤은 괜찮지? 서브도 안 알려주는 치사한 놈 옆에 그만 붙어있고, 오늘은 선배랑 좀 놀아주는게 어때."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는 얼굴이 귀엽다고 느껴지기 시작한 지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간다. 배구공을 만지작거리며 오이카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모습에 무작정 손을 잡고 체육관을 빠져나왔다.
연습을 해야한다고 투덜거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얌전한 모습에 도리어 이와이즈미가 당황해 걸음을 멈추었다. 뒤를 돌아보니 자신에게 손을 내어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카게야마의 모습이 보였다.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오이카와 선배가 저 보기 싫다고 그러셨어요?"


이와이즈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한 치도 예상 밖으로 흐르는 일이 없었다. 카게야마가 오이카와를 많이 신경 쓴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런데서까지 진심을 왜곡당하면 조금은 오기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런 거 아니야."
"?"
"너무 연습만 해도 머리가 굳는다고. 가끔은 기분 전환도 하고 그래야지."


예상외의 대답이라는 듯 다시 멍하니 저를 올려다보는 표정이 다시금 귀엽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카게야마한테 해로운 건 매일 괴롭히는 자신의 소꿉친구보다도 자꾸만 딴 마음이 드는 자신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이렇게 놓칠 순 없었다.


"오늘만 너 좀 빌려줘라, 카게야마."

가지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을테니까. 뒷 말은 속으로만 삼켰다. 뭐, 빌리는 걸 매일매일 하면 되겠지. 이와이즈미는 잡은 손을 조금 끌어당겨 카게야마를 제 옆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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