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은 대충 다 챙겨서 들려보내고 몇몇 가구들만이 남았다. 급하게 결정한 이사였지만 문제가 생기긴 커녕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사람처럼 일을 진행시켰다. 오이카와의 막힘 없는 지시에 이와이즈미는 혀를 내둘렀다.

 
뭐가 그렇게 급하냐?
그러게.


이와이즈미는 답지 않게 피식 웃고 마는 오이카와를 보곤 입을 꾹 다물었다. 오이카와가 차근차근 비워지는 이 집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지는 알 수 없었다. 

비워지는 건 가구들 뿐만이 아닐텐데.


에어컨은 어떻게 할까요?
....그건 놔두고 갈게요. 쓸 일이 없을 것 같아서.


이와이즈미는 언젠가 토비오쨩이 더위를 많이 탄다며 요란스럽게 에어컨을 들이던 오이카와를 떠올렸다. 어차피 자주 오지도 않는데 이게 다 무슨 난리야? 넌지시 핀잔을 주었지만 토비오쨩네 집에 있는 것 보다도 훨씬 시원한 최신식 에어컨이 있는 오이카와상네 집에 가자고 꼬실거야! 하고 경쾌하게 대답하는 얼굴에 가볍게 주먹을 선사해줬던 기억이 났다. 
그러니까 별로 쓰지도 못 할 거 사지 말랬잖아.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조용히 그러게, 네 말 들을 걸 그랬네. 하고 대답할까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대답을 알고 있는 질문은 상처만 헤집을 게 뻔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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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누구…세요…」
황「…아카싯치?」

「달칵」

황「」
적「좋은 아침이야, 키세」
적「키세는 별로 좋아보이지 않네」
황「…아카싯치가 왜 여기 있슴까?」
적「연락을 하나도 안 받길래」
적「죽었나 해서 와봤어」
황「」
적「…나 좀 들어가도 될까?」




*




「…아」
황「와 준건 고맙슴다 아카싯치」
황「미안하지만」
황「앞으로 연락은 잘 받을테니까 오늘은 돌아가주시겠슴까?」
적「」
적「다음에 오면 들여보내주는거야?」
황「」
황「다음에 또 오려고요?」
적「오늘은 돌아가달라길래」
황「아카싯치 답지 않은 말장난이네요」
적「오늘은 키세도 키세답지 않은걸」
황「」
황「…오늘 돌아가라고 해도」
황「계속 문 앞에서 서성거리면서 사람 신경쓰이게 할 거죠?」
적「아니」
황「」
적「그건 아닌데, 난 오늘 키세의 집에 들어갈거야」
황「」
황「…알겠슴다. 그럼 5분만 기다려주세요」


적「뭐 부서지는 소리가 났던 것 같은데」 황「기분탓임다」 적「저기 보이는 저건…」 황「」 황「원래 부서져있던 거예요」 적「」 황「진짜임다!」 적「」




*




적「좋은 집에 사네, 키세」
「별로 아카싯치한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슴다」
적「나, 지금은 쫓겨나서 예전같이 살지는 못 해」
황「에? 쫓겨났슴까?」
적「…뭐, 아무튼 그래서 오피스텔 한 채랑 별장 한 개가 전부야 지금은」
황「」
황「그래서, 오늘은 어쩐 일로?」
적「아까 말했잖아, 키세가 살아있는지 확인하러 왔다고」
황「」
황「아카싯치, 농담에는 소질 없는 거 암까?」
적「농담 아니야」
황「」
적「오히려 열받았다고 해야하나」
황「」
적「재능을 높이 사서 원래 쓰던 레귤러도 내보내고 주전 자리에 올려줬더니」
적「갑자기 연락도 끊고 연습도 안 나오는 건방진 부원이 있네?」
황「」
적「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을 거 같아, 료타?」
황「」
황「…아…아카싯치!」
적「더 좋은 방안을 내놓으면 그대로 실행하도록 하지, 료타」
황「」

황「」 적「」 황「」 적「…농담이야」 황「」 적「내가 좀 심했나?」 황「」 적「키세?」 황「솔직히 말해도 됨까?」 적「뭘?」 황「저 오늘 생을 마감하는 줄 알았슴다」 적「」 적「아무리 그래도 나 사람 해치는 취미는 없어」 황「(가위)」 황「(가위빵)」 황「」 적「?」 황「아… 아무것도 아님다」


적「아침은 먹었어?」 황「아직이요. 별로 생각도 없슴다」 적「프로는 아니라고 해도, 선수가 끼니를 거르면 안되지」 황「」 적「몇 일 동안 제대로 먹지도 않은 것 같은데」 적「애써 만들어 놓은 근육 다 빠졌겠네」 적「그래서 아오미네는 언제 이기려고 그래?」 황「!」 황「」 황「와, 아카싯치 너무함다. 사람의 컴플렉스를 그렇게 건드려도 되는검까?」 적「충격요법으로 쓰긴 한 건데」 적「전혀 안 먹혔단 표정으로 그런 말 해도 소용 없어」 황「…하하, 눈치 하난 굉장하네요」 적「아침은 차려줄게.」 황「?」 적「독약같은 건 안 넣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황「」




*




황「…잘 먹었슴다. 맛있었어요.」 적「굳이 그런 말은 안 해도 돼」 적「맛이 없을 리가 없으니까」 황「」 황「그래도 여러모로 황송하네요」 황「아카싯치가 직접 찾아와서 밥도 해 주고」 황「이제 진짜 용건을 말해도 되지 않슴까?」 적「용건?」 황「고맙긴 해도」 황「마냥 편하지 않은 건 사실이라서요」 적「」 황「농구부에서 나가달라는 얘길 하러 온 건 아닌 것 같고」 황「연락도 이제부터 받겠다고 말했으니까, 적당히 하고 이제 그만 돌아가줬으면 좋겠슴다」 황「아니면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슴까?」


적「울지 마」 황「」 황「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검까 아카싯치」 적「너 계속 괜찮은 척 하지만 다 알고 있었어」 적「네가 그 일로 힘들어 하는 거」 황「」 황「…어떻게…」 적「쫓겨났다고는 해도」 적「그 정도 위치에 있으면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게 있으니까」 적「네가 굳이 말하고 싶어하지 않아보여서」 적「나도 가만히 있었을 뿐」 황「」 적「위태롭다 싶더니 조짐이 보이길래 와 봤어」 적「역시나 이런 꼴을 하고 있네」 황「」 황「…그래서… 비웃으러 왔어요?」

황「내 꼴이 우스웠겠네요」 적「」 황「어설픈 위로는 필요없슴다」 황「사실 그게 더… 사람을 미치게 하거든요」 황「나는 널 믿었다느니 그런 말도」 황「아카싯치라도 어떻게 할지 모름다」 황「혹시 그러려는 생각이었다면 그냥 돌아가는 편이 좋겠네요」 적「나는 그런 말 하나도 안 했어」 황「」 적「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적「굳이 네가 하지도 않은 일에 상처받지 말라는 얘길 해주고 싶었어」


적「내가 당장 널 믿는다고 말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지?」 적「네 말대로 허울 좋은 말일 뿐이야」 적「아니면 그냥 막연히 모두 다 잘 될 거라고 말한다고 해도」 적「그건 그냥 말일 뿐이지」 황「」 적「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란게 이것 뿐이야」 황「」 적「나는 왜 네가 하지도 않은 일에 사과해야 하는 지 모르겠어」 적「그것 때문에 상처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적「그리고 내가 이렇게 생각하듯이 너도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어」 적「웃지 않는 네 얼굴은 너 같지 않아」 적「신경이 쓰이니까」


「…그런…가요?」
황「…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아카싯치는 처음 보네요」
적「나도 놀라는 중이야」
적「여러모로 재주가 있네, 키세」
황「아카싯치…」
적「…울지 말라고 했잖아」



적「울지 마, 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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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서오세요」
「다른 사람들은?」
적「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적「안쪽으로 들어오세요」
먹「그럼, 실례」


한시간 후

「솔직히 말해라, 아카시」
적「?」
먹「다른 사람들 안 불렀지」
적「그럴리가요」
적「모두 초대했는걸요」
적「그 분들이 안 오겠다고 했을 뿐」
먹「」
먹「네가 이러는데 오겠다고 하는 간 큰 놈이 어딨겠냐」
먹「그럼 너랑 나 뿐인거야?」
적「그런 셈이네요」
먹「」
먹「나 갈게」

「이 시간 이후로 이 섬 밖을 나가는 배는 없습니다」
먹「」
먹「너 일부러 그랬냐」
적「」
적「…죄송해요」
먹「…그런 표정 지을 건 또 뭐야」
먹「그냥… 읽다 만 책 뒷내용이 궁금해서 그런 것 뿐이니까 신경 쓰지 마」
적「그 책이라면 여기에도 있습니다」
먹「」
적「?」
먹「…됐다」
먹「내가 무슨 말을 더 해」



*



「배고프지 않으세요?」
먹「슬슬 출출하네. 뭐 먹을거라도 있어?」
적「」
적「사실 그 건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어요」
먹「뭔데?」
적「제가 대접하고 싶어서 도와주시는 분들 오늘 다 쉬게 했는데」
적「보시다시피」
적「손이」
먹「대체 뭐하다가 이렇게 다쳤어?」
먹「뭐 손을 잘라서 넣기라도 한거냐」
적「그렇게 하면 좀 더 맛있을까 해서」
먹「」

먹「됐어. 내가 할게.」

적「...」

「다쳐, 저리 가」
적「뭐 도와드릴거라도?」
먹「그냥 가만히 앉아있는게 도와주는거야」
적「…꼭 어머니처럼 말씀하시네요」
먹「아, 그러냐」
적「돌아가신지 오래되어서 기억은 잘 안나지만」
먹「」
적「」
먹「」
적「?」
먹「…뭐 먹고 싶은 건 없고?」
적「있긴 한데요, 선배는 아마 못 만들거에요」
먹「내가 이래봬도 요리 꽤 하는」
적「어머니가 만들어주신 크림수프요」
먹「」



*



「대접은 제가 해드려야하는데, 감사합니다」
먹「뭐, 별로 한 건 없지만 많이 먹어」
적「와, 정말 근사하네요」
먹「영혼을 담아서 얘기해줄래?」
적「정말이지 이런 모양의 오믈렛과 이런 색깔의 토스트는 처음 봐요」
먹「」
적「이걸 하는데 한 시간이나 걸렸다는 것도 신기하네요」
먹「」
적「어쨌든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먹「」

적「신기하게 맛은 있네요」
먹「그치?」
적「맛이라는 게 아예 없을 것 처럼 생겼었는데」
먹「」
적「나름 먹을만 해요」
먹「칭찬이냐?」
적「…당연하죠」
먹「뜸들이지 말고」
적「」
적「먹을만 해요」
먹「」


적「정리는 제가 할게요」
먹「그냥 둬, 상처 덧난다」
적「그래도…」
먹「나중에 두 배로 돌려받을테니까 걱정 말고」
적「」
적「」
먹「도와줄 거 없다니까, 아카시.」
적「…네.」



*



「뭐해?」
적「디저트 준비하고 있어요」
먹「하여간 한시라도 가만히 있질 못하지?」
적「」
적「이 정도는 대접하게 해주세요」
적「간단한 거라서 금방 끝나요」
먹「…뭐 만드는중인데?」
적「딸기요거트무스랑 밀크티요」
먹「」

「전혀 간단하지 않은데」
먹「내가 뭐 도와줄 건 없어?」
적「괜찮아요」
적「라고 말하고 싶은데 역시 손이 말썽이라. 저 쪽에 있는 우유 좀 갖다주세요」
먹「…자, 여기」
적「감사합니다」
먹「」
먹「」
먹「…그렇게 해서 되겠냐, 잠깐 기다려봐」
적「」
먹「손도 불편하다면서 하여간 고집은 있어가지고.」


적「」
적「」
적「저기, 마유즈ㅁ」
먹「아까부터 이런 걸 하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먹「그래서 그렇게 얼쩡거렸던 거 아냐?」
적「」
먹「애니메이션에선 이런 걸 소위 클리셰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내가 너를 뒤에서 끌어안고 같이 반죽을 섞고 있는 거라던가.」
적「」
먹「너무 정곡을 찔렀나」

「하여간 넌 너무 요령이 없어.」
적「」
먹「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스트레이트로 들어오면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먹「계속 신경쓰이게나 하고」
먹「내가 눈치 못 채게나 하던지, 나는 이런 쪽에 있어선 이미 만렙이라고.」
먹「라노베로 다져진 내공이 얼만데.」
적「」

적「...」

먹「너 원래 이랬었냐?」
먹「예전엔 무지 살벌했던 것 같은데」
적「」
먹「이젠 풀죽으면 풀죽었다고 얼굴에 티도 다 나고.」
적「」
먹「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먹「지금도 겨우 참고 있는데.」
적「」
적「?」
먹「적당히 귀여워야지 뭐 두고 보던가 하지.」
적「」
먹「애초에 이럴 거 알면서 제 발로 걸어들어온 내가 바보다」


먹「좀 봐줘, 아카시」
적「」
먹「이게 다 너를 위해서야」
적「뭐가 말입니까?」
먹「난 성인이지만, 넌 아직 학생이잖아」
적「그래봤자 1년 남았습니다만」
먹「」
적「뭐, 기다려달라고 하시니 기다려드릴게요」
먹「…잠깐, 뭔가 바뀌지 않았어?」
적「뭐가요?」
먹「」
먹「…아무것도 아냐」
적「대신 그 동안 참기 힘드실 것 같아서 선물 하나 드리고 싶은데」
먹「뭔데?」
「(쪽)」
먹「」
「!」
「…그럼 하던 거 마저 할까요?」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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